순례 엿새째 – 백두대간은 공사중

2004.05.18 | 녹색순례-2004

대기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숙소는 폐교를 재활용한 곳이다. 마을 주민회에서 관리하는 ‘푸른고원 산촌체험장’이라는 수련원이다. 대기리는 강릉시 왕산면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사는 살림형편은 끄트머리가 아니다. 과거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두메산간의 궁벽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고원을 개간하여 대규모로 밭농사를 짓고부터는 달라졌다. 집도 바뀌고 차도 생기고 지금은 강릉의 산간마을 중에서는 제법 사는 축에 속한다. 주로 씨감자, 배추 같은 고랭지 작물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삶이 윤택해진 뒤안에는 많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고, 배수시설의 부실로 인한 하천오염이라는 그늘도 가지고 있다. 대기리는 동강의 최상류지역에 속한다. 그래서 여름철 집중호우나 태풍이 오면 밭의 일부가 유실되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동강 아래 남한강이나 팔당에는 황토색 강물이 흘러간다. 이런 고랭지 재배단지의 환경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왔을 따름이다.

높은 지대라 아침부터 바람이 세찼다. 순례단의 선두에 펄럭이는 깃발 두 개가 펄럭이는 모습이 바람의 세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녹색연합’ 깃발과 ‘백두대간-공존을 위하여’라는 깃발이다. 그런데 펄럭이는 백두대간 깃발을 바라보던 구대수 사이버팀장은 “백두대간 공존을 위하여가 아니라 백두대간은 공사중”이라고 빗대었다. 쓴웃음을 지었지만 촌철살인이었다. 어디나 할 것 없이 부수고 갈아엎고 파헤치는 포크레인의 굉음이 이어졌고, 도로에는 덤프트럭의 무서운 질주가 이어지면서 마치 우리 고행의 순례를 비웃는 듯 했다. 수해복구 공사가 주를 이루었으나 일부는 도로를 넓히거나 새로 닦는 공사도 있었다.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보니 ‘한국도 이미 토건국가로 진입한 것 아닌가’라는 결론에 다가섰다. 무서운 일이다. 끊임없이 부수고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개발의 악순환이 토건국가의 실체가 아닌가.  

닭목재가 오르다 피동령을 넘기 위해 고무덕 마을 쪽으로 들어섰다. 들머리에서 벌써 대규모 벌목 현장을 만났다. 수만 평의 소나무 숲을 모두 잘라내고 허허벌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베어낸 소나무를 길가에 수십 그루씩 야적해 놓았다. 곳곳에 서너 무더기씩 벌목한 소나무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해 한 해 햇볕을 받고 물을 빨아 들여 형성한 흔적이 일 년에 한 개씩 차곡차곡 원을 그린다. 닭목재 분교 근처의 벌목현장에서 만난 잘린 소나무 나이는 30년생부터 많게는 80년생까지 있었다.

누가 무슨 일로 이 좋은 소나무를 베어냈을까? 궁금함과 함께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산림청이 백두대간만은 지키겠다고 해 놓고 이렇게 좋은 숲을 벌목하는 것을 방치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례단이 태백산을 출발하여 닭목재까지 오는 동안 백두대간 속 깊은 지역 곳곳이 벌목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피재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태백시 공원묘지 바로 전 백두대간 주능선 서쪽 언덕 전체를 비롯하여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댓재 일대, 임계면 임계리 늘목 근처 산자락이 바로 그곳들이다. 사람들의 눈이 잘 가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벌목이 이루어졌다. 주로 소나무나 참나무들인데, 대부분 40년이 넘는 숲이었다. 자연림 상태로 40년 이상 되는 숲을 잘라낸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재로 쓰기 위해 베어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베어낸 땅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일 텐데 과연 어떤 용도일지 정말 궁금하다. 숲의 공익 가치가 얼마인데 더구나 국토 전체에서 40년 넘는 자연림은 극히 일부분뿐인데 이것을 베어내고 잘라내고 다른 것으로 사용하다니 환경 가치를 떠나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차원에서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닭목재는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고개고, 피동령은 백두대간의 옆구리쯤 되는 산자락을 넘는 고개다. 고무덕은 백두대간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랭지 농업단지다. 백두대간 고루포기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해발 1,000m 전후의 능선 전체를 밭으로 개간했다.

그 좋았던 숲을 다 갈아엎고 밭으로 만들 것이다. 고무덕 둘레의 숲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는 둘레의 진입로에 펼쳐진 숲을 바라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피동령을 중심으로 닭목재 쪽에서 오르는 길이나, 도암댐 쪽에서 올라오는 길 모두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져 매우 안정화된 상태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경관 차원에서도 으뜸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숲이었다. 국립공원의 핵심지구에서나 볼 수 있는 숲이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숲이 저렇게 마구잡이의 농지로 방치되는 현장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고무덕의 고랭지 농업단지가 점점 넓어진 것이다. 백두대간 난개발 현안 중 고랭지 농업단지도 무시할 수 없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 농업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대표 영역이 고랭지 농업단지 아닌가 싶다. 문제는 대규모로 하는 것을 넘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해가 나면 토사가 무너지거나 유실되고 평소 농약과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하여 하천의 최상류 지역을 오염시키고 있다. 농림부나 지자체도 고랭지 농업단지를 개발하거나 확장하는 데만 골몰할 뿐, 지키고 보전하고 제대로 관리하는 데는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다.

피동령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니 더 큰 골칫거리가 우리를 반겼다. 바로 도암댐이다. 자연의 이치를 무시하고 효율과 경제성만을 추구하다가 자연의 준엄한 심판을 된통 맞은 대표 현장이다. 전에는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실렸던 대표적인 유역변경식 댐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에 대해 교만했던  개발시대의 자화상일 뿐 인간의 마음처럼 그렇게 환상적이지는 않았다. 유역과 유역 사이에 터널을 뚫고 물을 내려 보내 수력발전을 한다는 그럴듯한 설정이 사실은 엄청난 계산착오였다. 댐 상류 지역에 축산단지, 스키장, 골프장, 고랭지 채소단지 같은 대규모 오염원을 그대로 둔 채 정화시설도 없이 물만 가두었으니 썩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초 물을 내려 보냈던 강릉의 남대천은 오염되어 버렸고, 강릉시민들의 강한 반발로 물을 내려보지도 못하고 가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태풍 루사와 매미 때 애초의 물줄기였던 정선과 영월의 동강으로 물을 보냈다가 엄청난 수해를 가중시킨 도암댐, 그대로 물을 가두자니 점점 썩어가고 그렇다고 댐을 폐쇄하자니 그것도 쉽지 않고 진퇴양난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앞으로 도암댐은 또 다시 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자연을 잘못 이용하면 얼마나 심각한 대가를 치루는 지 가슴 깊이 새길 교훈으로 남았다.

※ 현장사진은 녹색순례 2004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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