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아흐레째 – 자연 파괴를 함께 하는 '양수발전소'

2004.05.21 | 녹색순례-2004

녹색순례 마지막 날. 점봉산 진동계곡을 거슬러 올라 양수댐을 가슴에 묻고 조침령을 넘어 양양 서림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이라는 점봉산이 순례의 마지막 코스였다. 그러나 점봉산은 시작부터 아픈 상처를 우리에게 드러냈다. 방동리에서 진동계곡을 따라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제 본 아침가리골 못지않은 풍광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소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세서 ‘쇠나드리’라고 하는 진동 2리 입구부터 감탄사는 사라지고 말았다. 조침령 관통도로 공사로 백두대간 허리가 허옇게 파헤쳐지고 있었다. 더욱이 수해복구 공사라는 이름으로 진동계곡 곳곳에 콘크리트를 바르는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사는 점봉산 양수댐 건설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았다.

남한 최대의 천연림과 희귀식물의 보고 전체를 파헤치며 들어선 양수댐. 정부는 자신들이 자연에 저지른 죄를 인정하기 두려워 사업의 명칭도 점봉산 양수댐이 아닌 ‘양양 양수발전소’라고 그럴듯하게 변조해서 부르고 있다. 자연생태계에 있어 댐은 치명적인 시설이다. 그런데 댐 중에서 가장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낳은 것이 양수댐이다. 점봉산 양수댐은 백두대간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벌막골 전체를 파헤치고 갈아엎으며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길을 올라 닿은 댐 공사 현장은 90% 가량 진행된 모습이었다.

점봉산 양수댐 건설 계획은 1993년부터 본격 이루어졌다. 토지매입은 96년부터였다. 이때부터 우이령보존회와 지역주민들은 점봉산 양수댐을 반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진동리 설피밭에서 ‘양수댐 반대 달짚 태우기’를 비롯하여 봄에는 ‘점봉산 꽃산행’ 같은 행사를 해마다 열기도 했다. 그러나 97년부터 댐 공사는 시작되었고, 이후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녹색연합도 양수댐 건설초기부터 백두대간 환경훼손 차원에서 꾸준한 대응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끝내 진동계곡 벌막골 수십만 평에 댐은 들어서고 말았다. 자병산 ‘라파즈 시멘트 광산’과 함께 백두대간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것이 점봉산 양수댐이다.

2004년 5월 20일 녹색순례의 걸음은 이 참혹한 생명 파괴의 현장에서 우리가 백두대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곱씹고 또 곱씹는 길이었다.

진동계곡부터 양수댐 물막이 공사현장까지 걸어서 오를수록 점봉산의 참혹한 상처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댐의 물막이 구조물에서 수몰지역을 걸어서 관찰했다. 댐 수몰 지역 100m 위가 백두대간의 주능선이다. 양수댐을 살펴본 뒤 백두대간 주능선으로 이동했다. 걸음 사이에 수많은 풀꽃과 나물들 사이에서 꽃핀 금강애기나리를 만날 수 있었다. 콩알크기의 작은 꽃이지만 전 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한국특산종인 희귀식물이다. 백두대간 주능선 중 만만치 않은 숲을 간직한 산에서만 살고 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종주한다.

하지만 이들 중 지리산 주능선 등산로 곳곳에 자신들이 걸어가는 발밑에 금강애기나리의 꽃이 무더기로 펼쳐진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는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의 중추가 되는 큰 산들을 수없이 다니지만 여기에 무수한 생명의 퍼포먼스를 제대로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피카소가 그린 동양화 같은 때깔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되는 금강애기나리꽃. 점봉산 진동계곡의 벌막골에는 금강애기나리의 수많은 친구와 형제들도 댐건설로 수난을 당했다. 댐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아픈 현실에서 그나마 아직 온갖 풀꽃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피나물, 뫼제비꽃, 얼레지, 벌깨덩굴, 바람꽃, 좀덩굴, 은방울 같이 우리를 맞이한 친구들의 미래를 누가 지킬 것인가? 백두대간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희가 이들을 지킬 것이냐’라고…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답을 할 수 없다. 다만 이 화두를 버리지도, 잊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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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백두대간을 주능선이 아닌 산자락을 따라 우리는 열흘 동안을 걸었다. 그동안 많은 산악인들이 주능선을 따라 종주를 했다. 하지만 골짜기와 고개를 오가며 백두대간의 주인인 지역주민들의 터전을 알고 배우기 위해 방문한 것은 이번 녹색순례가 처음이었다. 비록 지리산부터 비무장지대까지 남한의 전체 백두대간을 모두 순례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간에 대한 사랑과 배움은 부족함이 없었다.

백두대간은 웅장한 서사시이면서 오천 년 산과 살아온 민중들의 나이테였다. 거기에는 투쟁과 격동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모르고 잊을 뻔 했던 진정한 민중들의 문화가 촘촘히 얽혀 있었다.

아침가리, 고무덕, 평양말 같은 무수한 우리식 지명을 비롯하여 산신각과 서낭당도 여전히 고갯마루에서, 산골짜기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모르고 살아왔던 우리 땅의 알토란같은 실체가 백두대간에는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제 잠든 백두대간을 다시 깨워 산과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왔던 민족의 정수를 되살리는 일을 녹색연합은 하려고 한다. 생태와 문화의 만남을 넘어 진정 우리에게 땅은 무엇이며, 백두대간은 무엇인가를 밝혀 나갈 것이다. 그 첫걸음이 이번 순례에 참가한 오십여 명이 넘는 생명꾼들의 발품이었다. 우리가 지켜야할 조국의 산줄기 백두대간을 우리는 밝혀갈 것이다.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가듯이…

글 사진 / 녹색순례 2004 홍보팀 (서재철, 박경화, 윤지선, 이신애, 최성렬, 손승우)

※ 현장사진은 녹색순례 2004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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