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남부권인 서귀포지역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간다.
해발 450여 미터의 도로는 안개로 휩싸였다. 가시거리가 20여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길을 걷자니, 순례 참가자들의 안전이 걱정된다. 제주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여 난대산림연구소까지 오는, 지난 여정에서 만났던 국도와 지방도의 위험한 상황이 영상처럼 스쳐간다. 우리나라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국도도 갓길이 없기 때문이다.
난대산림연구소를 나오자 만난 도로는 5.16도로로 이름 붙여진 11번 국도이다. 5.16도로는 서귀포 동쪽과 제주시 중앙을 잇는 도로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또 다른 도로로 해발 1,100m를 지난다고 해서 1100도로라 이름 붙여진 99번 국도와 함께 한라산 국립공원의 양끝을 단절시키는 도로다.
5.16도로 구간은 시내를 지나기에 다행히 인도가 있다. 30분을 오르니 제2산록도로로 이름 붙여진 1115번 지방도로 접어들었다. 제2산록도로는 원수악에서 돈네코를 잇는 도로로 90년대 중반 관광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제2산록도로의 갓길 폭은 70~80cm 남짓하다. 가시거리 20여미터, 70~80cm의 갓길을 걷는 것이 위험스러워 순례 대열 앞뒤로 안전을 담당하는 순례 진행팀이 섰다. 가져온 안전봉을 아래 위로 흔들며 달려오는 차량의 속도를 늦춘다. 다행히 많은 차들이 속도를 줄여주지만, 이를 무시한 채 무서운 속도로 순례대원들 옆을 내달리는 차들도 있다. 어제 남원 동백마을에서 물영아리오름을 지나 물찻오름으로 가는 길인 1118번 지방도로에서 만난 25톤 덤프트럭의 질주가 생각나 아찔하였다. 지나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은 것이 위로라면 위로다.
한라산 남측과 서귀포 북측 사이에 위치한 제2산록도로는 5.16도로, 1100도로와 이어지며, 한라산 북측에 위치한 산록도로(1117번 지방도)와 만나 순환도로를 이룬다. 제주도 둘레를 순환하는 일주도로 중 가장 한라산에 근접해 있다. 제주도에는 무려 3개의 순환도로가 있다. 해안지대를 순환하는 12번국도, 해발 150여 미터에 위치한 중산간지대를 순환하여 중산간도로로 이름 붙여진 16번 국도, 그리고 해발 450여 미터에 위치한 제1, 제2 산록도로로 이름 붙여진 1115번 지방도와 1117번 지방도이다. 사슴들이 뛰어놀던 곳이라서 산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록도로 때문에 노루의 서식처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제주도가 도로로 갖는 문제는 한반도의 축소판이다. 3개의 순환도로, 해안지대를 도는 12번 국도로도 모자라 해안선 바짝 붙여서 건설되는 해안도로, 제주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7개의 종축도로, 여기에 미로처럼 얽혀있는 시군도와 농어촌도로 등으로 제주도의 생태계는 파편화되었다. 특히 제주를 넘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진 자연자원인 곶자왈이 도로로 심각히 훼손된다.
곶자왈을 관통하는 주요도로로는 애월곶자왈을 단절시키는 평화로로 이름 붙여진 95번 지방도(제주시와 대정을 잇는 도로)와 제1산록도로, 안덕곶자왈을 단절시키는 평화로와 중산간도로가 있다. 또한 월림-신평곶자왈을 단절시키는 제2산록도로와 1121도로, 조천-함덕곶자왈을 단절시키는, 남조로로 이름 붙여진 1118번 지방도와 번영로로 이름 붙여진 97번 지방도, 조천-함덕곶자왈을 가로지르는 중산간도로, 구좌-성산곶자왈지대를 단절시키는 비자림로로 이름 붙여진 1112번 지방도가 대표적으로 곶자왈지대를 단절시키는 도로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시군도와 농어촌도로 등이 곶자왈 지대를 가른다. 이들 도로는 곶자왈을 파편화할 뿐만 아니라, 파편화현상에 따른 곶자왈 식생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도로로 인한 생태축 단절은 바로 로드킬로 이어진다. 제주도의 대표 야생동물은 누가 뭐라해도 노루다. 제주도 전체에 살고 있는 노루의 개체수가 1,500~2,000마리라 하는데, 해마다 로드킬로 죽어가는 노루의 개체수가 발견된 것만으로도 100여 마리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현실인가. 해마다 태어나는 노루수와 해마다 로드킬로 죽어가는 노루의 개체 수가 비슷한 것은 아닐런지. 순례단원들이 목격한 로드킬만도 두차례나 된다. 둘 다 족제비였다. 한 마리는 김영갑갤러리로 가는 시군도에서, 다른 한 마리는 동백마을에서 물찻오름으로 가는 1118번 지방도에서. 올무나 덫은 특정인의 소행이어서, 그들을 단속하면 되지만, 로드킬은 차를 모는 누구나 대상자가 되기에 더욱 예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야생동물이 마음 놓고 이동할 수 있는 생태이동통로를 만드는 것이 필수이지만, 이에 덧붙여 우리 모두가 야생동물을 생각하여, 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속도를 줄이는 운전습관을 갖는 것도 몸에 밴 습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로는 수해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제주도의 도로도 예외는 아니다. 순례 이튿날 선흘곶자왈에서 내려오는 길에 걸었던 농어촌도로가 생긴 이후 구좌읍 하도리 사람들은 물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농어촌도로가 물길 역할을 해서 12번 국도를 따라 해안가가 물에 잠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도로 갓길에 폭 1m, 깊이 1m쯤 되어 보이는 대형 빗물 배수관이 최근에 만들어진 듯 보였다.
제주도 도로 문제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안도로다. 김녕-한동리, 세화-하도리-종달리-성산, 산양리-신산리, 표선리일대, 일과리-신도2리 등이 대표적이다. 해안도로의 가장 큰 문제는 제주도의 차별성 있는 관광자원을 모두 훼손시켰다는 점이다. 제주는 섬의 지역으로 관광자원에서 해안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거꾸로 관광자원화란 명목으로 해안선을 따라 도로를 건설하는 근시안적 정책으로 지금은 육지와 차별성 있는 제주의 해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제주의 해안도로의 가장 큰 문제는 해안경관을 고려하지 않고 바닷가에 바로 붙여 도로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해안 사구등 생태환경을 훼손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재해대책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처럼 태풍이 빈번하거나 큰파도가 있는 곳에서 바닷가에 도로를 건설하여 재해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해안도로는 이용률도 떨어진다. 평소 해안도로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거나 가끔씩 다니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도로를 건설하는 전근대적인 접근이 제주만의 관광자원을 다 훼손한 것이다.
제주도 도로의 또 다른 문제는 무분별하게 포장되는 농어촌도로이다. 오늘 순례단이 들른 영남마을에서 농어촌도로의 현실을 만날 수 있었다. 법정지명으로 영남동이라 붙여진 이곳은 그러나 행정상으로는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1948년 4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16가구 90여명이 살던 이 마을은 4.3항쟁 때 최소 60여명, 최대 72명이 숨졌고,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살지 않는 마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살지 않는 바로 이곳까지 잘 닦인 포장도로가 나있다. 현재도 농어촌도로가 곳곳에 건설 중이다. 이미 마을 농지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콘크리트도로가 있음에도, 그 주변에 농어촌도로라며 2차선 아스콘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전형적인 예산낭비다. 농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예산지원이나 기반시설이 오직 도로 뿐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장이다. 성산읍 삼달리-신풍리 구간은 거의 공사를 완료한 단계다. 신흥리-수망리 구간도 현재 공사가 거의 끝난 상태다. 공사가 진행 중인 곳으로부터 약 500m 주변에 기존 지방도로가 있으며 건설구간 내에도 콘크리트 도로가 존재한다. 농어촌도로는 농어민을 위한 사업이라기 보다. 사업을 해야 존립근거가 마련되는 일부 공무원과 건설회사를 위한 도로로 여겨진다.
제주도의 도로 포장율이 82.7%로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인천 등 7개의 광역시를 제외하고, 전국광역도 가운데 가장 높다는 통계자료는 이를 뒷받침해 준다. 현재 제주도의 도로 총연장은 3,200km에 이른다. 1946년306.1km에 비해 무려 11배가 증가한 것이다. 제주도의 자연을 걸으며, 온전히 몸으로 느끼는 관광이 아니라, 특정 유명한 관광지에 들렀다가 사진을 찍고 돌아서서는 다른 관광지로 향하는 관광문화와 국고를 보조해 준다면, 그곳 상황이 어떻든 도로를 개설하고 보자는 행정이 낳은 폐해이다.
제주도는 도로과잉 시대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도로가 많으면 제주가 더욱 번영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물론 일부는 번영을 누렸다. 공무원과 건설회사들이다. 제주도에만 등록된 건설회사가 약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역경제의 왜곡을 가져왔다. 이미 싫든 좋든 도로를 건설하거나 이와 유사한 개발사업이 있어야만 지역경제의 일부가 돌아간다는 서글픈 현실이 존재한다. 섬 지역의 소외를 달래는 육지의 선심마냥 건교부의 각종 도로예산과 행자부의 농어촌도로예산 등이 뭉텅이로 제주에 배분되면서,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체질이 되었다. 그래서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도,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도로를 건설해야 한다. 심지어 에코로드라는 이름까지 들먹이며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도로는 한편에서는 편리와 효율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제주처럼 관광으로 먹고사는 지역에서 도로의 무분별한 확대는 두고두고 이용해야 할 관광의 가장 핵심적인 자원인 자연과 문화 등의 원형을 남김없이 바꾸어 버린다. 차로 휙 둘러보고 가는 지역에 어떤 매력이 있을 것인가, 제주도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 될 것이다. 이제 제주는 삼다도가 아니라 사다도로 불려져야 할 것이다. 바람, 돌, 여자에서 도로라는 것이 추가된 사다도로 말이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 도로가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광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한 지점을 정하고 그 지점만을 둘러본 후, 횡하고 돌아서는 관광이어서는 안 된다. 물찻오름을 올라가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난대림의 아름다움과 그 곳에 깃들어 사는 동물들과 교감을 느꼈던 순례처럼, 과정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느끼는 관광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도로가 단순히 지점과 지점을 연결해 주는 수단만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시대가 곧 다가오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