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고산(1,067m)에 오른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낙엽이 사박사박 거린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폭의 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신발을 벗고 걸으니 낙엽 쌓인 땅이 아기 담요처럼 부드럽다. 숲은 건너편 능선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다. 통고산 정상에 오르니 울진-봉화-영양 등을 지나가는 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동정맥이다.
낙동정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내려오는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는 태백산에서 갈라져 영남 한가운데로 뻗어가는 산줄기이다. 태백시 매봉산(1,145m)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경북, 경남, 울산을 거쳐 410km를 뻗어 내려오다 부산광역시 다대포 물운대에 다다른다. 낙동정맥은 영남권 전체를 아우르는 산악지역의 중추이자, 산림생태계의 보고이다.
낙동정맥은 그저 높은 산줄기가 아니라 동·식물의 분포, 지역의 문화적 차이 등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통고산 정상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줄기를 기준으로 서쪽의 모든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흐르고, 동쪽의 모든 물줄기는 울진 왕피천과 불영계곡으로 모여 동해로 나간다. 유역이 달라지는 것과 함께 동쪽은 동해안의 해풍(海風)의 영향을 받고, 서쪽은 산간내륙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바람의 차이는 곧 강우량과 적설량 같은 서로 다른 기후를 만들고, 이는 식생(植生), 개화(開花)일수의 차이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기후의 차이는 옛 사람들의 생활방식까지 영향을 미쳐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통고산은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생태적으로 보전이 매우 잘 되어 있다. 능선 곳곳에 금강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신갈나무와 굴참나무는 시원한 숲 그늘을 만든다. 오르막길을 오를 땐 땀이 나다가도 잠시 앉아 쉴 때면 금세 식어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금강소나무, 참나무가 하늘을 향해 시원히 뻗은 아래에는 다양한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애기나리, 쥐오줌풀, 노루오줌풀, 홀아비꽃대, 둥글레 등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개중에는 흔히 보기 힘든 큰앵초 군락과 환경부지정 멸종위기2급인 노랑무늬붓꽃도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다. 포유동물은 산양, 수달, 삵, 담비, 하늘다람쥐 등 곰을 제외한 현존하는 모든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이곳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낙동정맥은 최근 10년 사이에 급격한 난개발에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개발 사업 이후 복원을 하지 않고 방치된 곳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통고산을 1시간 가량 오르자 차량 2대가 다닐만한 폭의 임도(林道)가 나타났다. 임도 건설과정에서 산중턱이 깎여나갔다. 임도 옆 높이 10m 가량의 사면(斜面) 위쪽으로 벌거벗은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보였다. 산비탈을 깎는 과정에서 발생한 흙은 임도 아래쪽 사면으로 밀려나 있었다. 비가 오면 이 사면의 흙이 밀려 내려 아래쪽 나무에 피해를 입히고, 사면의 흙과 돌은 다시 임도와 산 아래 마을로 쏟아져 내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도로는 이보다 더 크고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진다. 2003년, 낙동정맥의 주요 고개 중 하나인 애매랑재에 경북 영양과 봉화를 잇는 지방도로가 건설되었다. 도로건설 과정에서 작은 고개 하나가 잘려 버렸다. 이어지던 산줄기가 끊어지면서 모든 생태축이 단절됐다. 그러나 수십 억의 혈세를 쏟아 부으며 만든 이 도로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순례단이 1시간 30분 남짓 도로를 따라 걸을 동안 겨우 차 6대가 지나갈 뿐이었다.
풍력단지 건설로 심각하게 훼손된 현장도 낙동정맥에 있다. 바로 경북 영양군 맹동산이다. 맹동산은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건설로 원상복구가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 녹지자연도 8등급으로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숲임에도 불구하고, 정상부의 절반이 급경사로 절개된 것이다. 진입도로는 허가받은 폭 5m보다 넓은 7, 8m로 만들어졌고, 풍력발전기 1대당 훼손 면적은 사방 50m를 넘는다. 화석연료의 대안인 대안에너지가 도리어 숲을 훼손하고 들어선 것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보급과 추진에도 우리 현실에 맞는 절차와 방법이 제기된다.
도로, 오직 인간의 길로만 남았다
통고산 깊은 숲에서 나와 애매랑재에 이르자 숲이 열리고 능선이 펼쳐지면서 갑자기 가파른 비탈길이 나타났다. 산도 능선도 아닌 애매한 곳이라해서 이름 붙여진 애매랑재는 도로가 생기면서 이제 허리가 잘린 위태위태한 벼랑이 되어 있었다. 한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곧 추락할 것 같았다. 산 허리가 잘리면서 이제 그 길은 숲이 베이고 동물도 더 이상 지나다닐 수 없고, 오직 인간의 자동차만이 내달릴 수 있는 고독하고 이기적인 길이 되어 버렸다.
– 글 : 김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