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일곱째 날] 왕피천은 아직 수천 년 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2009.05.19 | 녹색순례-2009

녹색순례의 마지막 발걸음은 왕피천이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 일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울진군 서면 왕피리를 거쳐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약 65km의 하천이다. 녹색연합은 2000년 울진군청과 함께 왕피천 일대의 생태환경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왕피천의 생태계는 매우 잘 보전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녹색연합은 2002년부터 왕피천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2005년 10월 14일, 환경부는 울진군의 왕피천 유역을 포함하는 102.84k㎡(약 3천만 평) 일대를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imgcenter|090517_1.JPG|400|▲ 비오는 날 안개가 자욱히 내려앉은 왕피천. 맑은 물과 기암 절벽이 어우러진 왕피천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0|0]

[imgcenter|090517_2.JPG|600|▲ 왕피천을 둘러싸고 있는 낙동정맥의 줄기들. 주변의 울창한 숲은 왕피천의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0|0]

왕피천은 그 절경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전국의 두메산골 하천 중에서도 으뜸의 자연생태계와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동강과 필적할만한 물줄기이다. 하천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가운데로 폭 수십 미터의 맑은 물이 흘러간다. 그리고 이 공간 전체를 짙푸른 숲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험준한 산과 위태위태한 바위 덕분에 바깥세상과 격리된 왕피천은 수천 년 전의 시간과 공간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 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아름다웠다.

조사를 하기 위해 왕피천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바위 위에서 암회색 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에는 물고기 비늘과 뼈 등이 섞여 있었다. 미루어 보건데 하천의 포식자, 수달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바위틈에서는 맑은 물에만 사는 물두꺼비와 무당개구리도 볼 수 있었다. 녀석들은 낯선 이들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 적잖이 놀란 듯 황급히 달아났다. 이외에도 왕피천에는 산양, 하늘다람쥐, 담비, 삵, 구렁이, 원앙 등 멸종위기종이 13종 이상이나 서식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엔 계절에 따라 황어, 은어, 참게 그리고 연어가 찾아온다. 가히 ‘야생동물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보전 지정 이후, 남겨진 숙제
[imgleft|090517_3.JPG|350|▲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 발견한 폐기물. 대형폐기물의 방치는 관리주체인 환경부의 지정 이후 왕피천에 대한 관리소홀을 보여준다..|0|0] 그리고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일대에는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은 왕피천의 빼어난 생태환경 보전을 가능케 하였지만, 주민들은 이로 인해 생활 전반에 걸쳐 적잖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보전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때문에 보전지역 지정 이후 주민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환경부는 보전지역 지정 이후 울진, 양양 지역 주민 90여 명을 왕피천 감시원으로 고용하여 관리하고 있다. 왕피천 감시원의 역할은 탐방객 통제와 왕피천 생태계 모니터링이다. 그러나 모니터링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민이 감시원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업을 포기하거나 일시적으로 접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감시원 활동 조건은 생업을 포기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감시원은 월급 100만원 남짓의 비정규직으로 활동하며, 활동기간은 고작 6개월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생업과 감시원 활동을 같은 위치에 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감시원 활동에 합당한 복지․처우 등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부는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지정하면서 향후 지속적인 관리를 해 나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지정 이후 왕피천 관리를 위한 예산 책정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지점의 하천에서 하천 위에 떠 있는 거품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의 생활하수가 원인인 듯 했다. 왕피천 상류에 해당하는 송방마을에는 주민 약 150명 가량이 살고 있다. 때문에 왕피천의 수질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정마다 상․하수도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주민들 역시 지자체에 상․하수도 시설의 설치를 계속 요구해오고 있다. 그러나 지정 이후 4년이 지난 지금도 상․하수도 시설 공사는 실행되지 않고 있다.

[imgcenter|090517_4.JPG|600|▲ 왕피천 하류를 지나는 곳에서 오랜만에 내린 단비로 부지런히 모를 심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왕피천 곳곳에 들어 앉은 두메산골 마을의 주민들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0|0]

주민이 느끼는 직․간접적 경제적인 손해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울진, 양양 일대 주민들은 산에서 나무를 해 와 난방을 했다. 그러나 보전지역 지정 이후 근처 산에서 나무를 채취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됐다. 환경부는 보일러 시설 설치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난방문제는 환경부와 산림청 간의 부처 이기주의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역주민에 따르면 산림청이 이 일대에도 간벌을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산림청은 주민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간벌목을 주민들에게 공급하지 않고 있다.

일부 마을에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마을 공동의 숙박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환경부가 지원하는 생태관광사업의 일환이다. 그러나 보전지역의 중요도에 따른 연구자, 일반탐방객 등 방문목적에 따른 출입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태관광을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다. 생태관광은 지역 주민이 주체적으로 결합하여 진행할 때만이 ‘보전과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왕피천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그 뛰어난 생태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획기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정한 이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보전지역 지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녹색연합과 울진군청뿐만 아니라 환경부, 산림청 그리고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번 왕피천 순례를 통해 녹색연합은 지정 이후 녹색연합의 활동을 돌아보고, 향후 보전활동에 대해 중요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imgcenter|090517_5.JPG|600|▲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내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생태경관보전지역의 환경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의와 참여가 필요하다.|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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