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따라 걷는다. 생명의 흔적을 찾아 걷는다. 바람의 길을 따라 나무들이 손짓하는 길을 걷는다. 나를 스치는 모든 것들이 내 안에 녹아들 수 있도록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오직 걷고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는 것으로 나는 사라지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그 자리에 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서 계절이 바뀌고 다른 내가 내 속에 자라고 있음을 느낄 때 커다란 기쁨과 대견함으로 스스로를 보게 된다.
그렇게 드나든 설악산은 내게 어머니가 되어 나를 품고 다독이며 일으켜 세우는 존재가 되었고 숲 속에서 만난 산양은 형제가 되어 나와 더불어 설악산 어머니의 품속에서 살고 있다. 뭇 생명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설악산에 들어 내 삶은 가벼워졌고 자연을 외경심으로 바라보며 예의와 염치를 갖추려 애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더불어 살아야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느린 걸음을 걸으며 얻는 것들로 나는 얼마나 풍요로워지며, 빠른 걸음으로 놓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연두 빛으로 물들어가는 설악산을 마주보고 서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는 날들이다. 나무마다 작은 이파리 하나를 매달려 온힘으로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빨아올려 뭉글거리며 설악산을 연두 빛으로 덮어간다. 정수리까지 연두 빛으로 물들고 붉은 진달래꽃을 피울 때쯤이면 낮은 곳 숲은 이미 무거워져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더위를 잊으려 그늘 밑을 찾아드는 산양을 먼발치에서라도 보는 날이면 북받치는 설렘으로 가슴은 터질 듯 하고, 어미 곁에 바짝 붙어 아장거리며 걷는 어린 산양의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은 숲을 정령들이 사는 신비로운 곳으로 바꾼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저마다의 아름다운 색깔로 가을을 맞이한 나무들은 모여서 더 아름다운 숲을 만들었다. 늦가을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텅 빈 숲에선 깊이 스며드는 햇빛으로 열매들이 익어가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짐승들의 발걸음은 바빠진다. 목덜미를 스치는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는 때가 되면 설악산 정수리는 허옇게 빛나고 생명의 소리조차 가냘파지는 날들이 이어진다. 눈은 깊어지고 짐승들의 발자국이 길게 찍힌 숲에 들면 생명의 흔적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도 작은 생명으로 그 곳에 발자국을 남기고 사라지면 산양과 멧돼지가 다가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나를 떠올릴까?
계절의 흐름 따라 모습을 바꾸는 설악산은 뭇 생명을 품고 기르며 자연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계절의 흐름은 어김이 없고 우리들의 삶도 흐름에 따라 잠깐 머물다 사라질 뿐이다. 바위를 기대고 앉아 연두 빛 하늘을 바라보다 졸음에 겨워 깜빡 잠이 들면 나도 한 마리 산양이 되어 설악산을 누빈다. 덜컥 발목을 죄어오는 아픔으로 몸을 비틀다 잠이 깨면 저린 발을 움켜잡고 코끝에 침을 바른다. 어느새 해는 기울고 어둑어둑해지는 골짜기에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하늘은 검붉게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별 하나 얼굴을 내밀어 나를 바라본다. 순식간에 어둠은 깊어지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누워 온몸을 감싸는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설악산은 어떤 존재인가? 산양은 나와 어떤 관계인가? 물음에 대한 답은 설악산에 들어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이며 산양을 만났을 때 북받치는 설렘이다.
설악산을 품고 느린 걸음으로 산길을 걷는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간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내일 걸어갈 길을 생각한다. 나를 내려놓고 오직 설악산 어머니와 산양 형제를 생각하며 걷는 길에서 무엇을 얻으려 애쓰지 않아도 설악산의 기쁨과 슬픔, 아픔까지 모두 나의 것이 되어 젖어버릴 내 몸을 본다. 나의 모든 것을 덜어낸 자리에 설악산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도 내 몸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해지리라. 무엇으로 이 순간을 바꿀 것이며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설악산 어머니는 끊임없이 우리들을 다독이고 일으켜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아! 설악산 어머니여! 산양 형제여!
글 :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이 글은 녹색희망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