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동백꽃 다시 핀다> 다섯 번째 이야기: 한라산, 통곡의 세월을 넘어

2018.04.15 | 녹색순례-2018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배낭을 메고 온 몸을 자연에 의지한 채, 열흘 간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이 땅의 아픈 곳, 그 신음 소리를 들으며 대안과 공존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제주 4.3 70주년인 올해는 ‘동백꽃 다시 핀다’라는 주제로 제주 전역의 4.3 유적지와 분쟁 지역을 걷습니다. 4.3 평화공원을 시작으로 북촌, 우도, 성산, 남원 그리고 강정과 송악산을 지나 한라산을 넘는 코스입니다. 순례는 4월 3일부터 4월 12일까지 9박 10일간 진행되고, 다섯 번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4.3 특별법(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1999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한다. 제주도의 많은 사람들은 이제 마음 놓고 울어도 되는 거냐며 눈물로 환호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3년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는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한다. 참담한 인권유린과 살육의 피해로 인용되는 ’진상조사 보고서‘가 바로 이 보고서이다.
http://www.43archives.or.kr 제주4.3아카이브 사이트 (문헌자료 코너에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보고 받고 제주도에 내려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힌다.
“저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번 4.3 희생자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3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예술가들을 일일이 언급했으며 추념식에서는 4.3을 소재로 한 시가 낭독되고,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하고,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작품이 배경으로 지나갔다. 국가보안법과 연좌제가 서슬 퍼렇게 4.3의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사건을 망각하지 않도록 작품을 창작했다. 우리가 경험한 비극적 사건에 대해 관련법이 만들어지고 공식적인 언어로 사건이 호명되는 것은 늘 늦다.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차고 넘칠 즈음에야 가능하다.

ⓒ강요배 화백, 동백꽃 지다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지 불과 6년인 1960년 ‘4.3사건 진상규명 동지회’를 결성해 현장조사를 나갔다 구금되었다는 제주대 학생 7명, 1980년대 전국 대학 학생회를 찾아다니며 제주 4.3의 진상규명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한 제주 청년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한라산을 향한다.
녹색순례의 마지막 코스는 한라산이다. 돈내코 탐방 안내소에서 시작해 윗세오름을 지나 어리목 휴게소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해발 1,947미터의 한라산 풍경은 변화무쌍하다. 탐방로 데크를 지나면, 경사진 바윗길이 한참 이어지다 산책하듯 푹신한 오름 길이 나타났다. 너른 벌판이 보이다가도 병풍 같은 기암절벽이 보이고, 가까이는 구상나무가 빼곡하게 나타나 절경이다. 잠깐이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을 걷기도 했다.

ⓒ녹색연합

ⓒ녹색연합

한라산을 넘으며 지난 순례의 시간들을 회고해 본다. 3만 여명 추정.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동굴에서 죽고, 오름에서 죽고, 절벽에서 죽고, 골짜기에서 죽었다. 바다에 수장되고 육지 형무소에서 죽고 해외로 떠나서 돌아오지 못했다. 시신을 찾을 수 없어 헛묘가 만들어지고, 여전히 유해는 발굴 중이다. 제주의 곳곳은 생명이 약동하는 봄기운으로 가득한데 4.3 사건을 생각하며 걸으니 아름다움도 죄스럽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는 미국의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국의 사상가인 노암 촘스키는 “1945년부터 1949년 6월까지 미군이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 통제했기 때문에 제주 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 행위에 대해 미국은 윤리적 책임뿐 아니라 실체적이고 법적인 책임이 있다”고 했다. 당시 문서기록과 2003년 우리 정부가 발간한 진상조사 보고서에도 당시 미군정과 미군고문단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제주 4.3을 제대로 된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안팎으로 묻고 따지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동백꽃 다시 피는 제주를 바라며 열흘 간의 도보 순례를 마친다.

<제주 4.3 미국 책임규명 10만인 서명> 바로 가기 https://goo.gl/xDm1eG
2018 녹색순례 10일의 기록 영상 <동백꽃 다시 핀다> https://youtu.be/9M7ke4DBIGU (이다솜 제작)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작성: 녹색연합 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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