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6일째, 순례단은 악마의 알을 뒤고 하고 영광 풍력발전단지로 향하는 걸음을 내딛었다. 영광주민들은 한빛원자력발전소의 6개 돔을 악마의 알이라고 불렀다. 원자로가 있는 격납고 돔이 악마의 알이라면, 방사능은 악마의 물질이라 했다. 이 물질은 어른들보다 아이들, 태아에게 더 치명적이기에 수십 년 해온 반핵운동이 지친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기운을 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광대교를 지나 백수해안노을길을 걷다. 잔잔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해안.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는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아직은 흐리다. 절반 쯤 걸었을까?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순례길 엿새째 23킬로의 여정의 끝은 백수읍 일원의 풍력발전단지이다. 석탄화력과 원자력을 넘어 에너지 전환을 향해 걸어온 녹색순례 기후여정의 막바지이다. 이곳에는 호남풍력, 지산풍력, 약수풍력, 영광풍력, 백수풍력 등 총 170MW, 76기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이 주목되어야 할 이유는 풍력발전만이 아니다.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특별지원금과 기본지원금은 주민복지 기금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일부를 태양광주민발전의 토대를 다진 곳이기 때문이다. 백수읍 상·하사리 주민들은 백수풍력발전단지 조성과정에서 지원되는 특별지원금을 2MW 주민태양광발전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여 2016년 4월, (주)주민발전을 설립했다. (주)주민발전은 백수읍 상하사리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시공 및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주)대한그린에너지가 각각 50% 지분으로 참여한다. 발전소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지역 전체 주민으로 구성된 주주들에게 고르게 분배된 주식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될 예정이다. (주)대한그린에너지의 지분은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위해 마련한 대출금의 원금을 상환하면 지역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했다.
상하사리 뿐만이 아니다. 백수풍력과 영광풍력의 특별지원금을 기반으로 영광군 백수읍과 염산면 일대에는 (주)신성주민발전-염산면, (주)약수주민발전-약수리, (주)지산주민발전-지산리 설립이 추진되고 있으며, (주)상하사주민발전까지 완료되면 이 일대 주민태양광발전 규모는 총 4.8MW가 될 예정이다. 모두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늘 순례단이 묵을 백수남초등학교는 ㈜상하사주민발전이 풍력발전 지원금을 활용하여 백수남초등학교를 영광교육청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은 곳이다. 이곳은 현재 건강센터를 운영하여 마을 주민들의 휴식과 여가 공간으로 사용 중이고, 향후 교육센터를 운영하여 요가, 국악, 컴퓨터 강좌를 열 예정이고, 이바돔 감자탕과 연계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여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풍력발전 지원금을 태양광 사업을 위한 재원으로 확장시킨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애초에는 수익률이 높은 풍력발전 지분투자를 고려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풍력발전 융자를 상환을 고려했을 때, 12년간 수익을 분배하기 어려운 구조이므로, 바로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태양광발전을 택했다고 한다. 나이 드신 분이 많기 때문에 12년 이후부터를 제안하기에는 무리였던 셈이다.
사실상 풍력발전 초기에는 주민들 내부의 불화가 심했다. 주민들에게 풍력발전 사업설명을 충분히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기가 세워질 때조차 주민들은 저게 뭐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 몇몇 사람들에게만 정보가 제공되고, 농지 임대 주민들에게만 임대료를 지불하다보니, 주민들에게 풍력발전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는 차이가 있었다. 풍력발전 1기를 위해 300평의 농지를 임대해주는 경우, 20년간 매년 600만원의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바로 옆에 풍력발전기를 두고도 농지 임대와 무관한 주민은 소음과 음영 피해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가능한 풍력발전과 그 이익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주민지원과 이익배분방식을 고안하는 것이 풍력발전 확산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상하사리청장년회장과 이곳 출신 대한그린에너지 본부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심했고, 상하사리 청장년회 산하에 신재생에너지본부를 두어 의견을 모아내며 ㈜주민발전을 추진해냈다.
전 세계는 석탄과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어나가고 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을 발생시키는 원자력으로부터 햇빛과 바람을 발전원으로 하는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 전력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2040년 목표는 그 이상, 배는 더 높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을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에 취약한 상황으로 이것이 미치는 영향과 파급은 전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태양과 바람은 수입할 필요도, 이를 위해 비용을 치를 필요가 없다. 거대한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시설은 내가 사는 주변 곳곳에 설치가 가능하다. 특정 지역에 거대한 발전소를 지을 필요도, 전력소비가 많은 대도시로 장거리 송전을 위해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도 하며, 유해물질도 나오지 않는다. 태양광 패널에서 나오는 중금속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핵산업계가 퍼트리는 대표적인 가짜뉴스일 뿐이다. 내가 사는 지붕에 태양광을 달면 따로 전기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남은 전기는 현금으로 정산해주기도 한다. 지붕이나 배란다가 없으면 시민참여형 태양광 펀드에 참여하거나 에너지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어 함께 부지를 찾아 태양광을 달아도 된다. 영광의 주민발전소처럼 농촌에서 공동으로 부지를 확보하고 시설 융자를 받아 발전소를 설치하고 전력 판매 수익을 고르게 나눌 수도 있다. 이렇게 햇빛과 바람을 경작하는 에너지 농부가 되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글 : 임성희 (전환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