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땅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되며, 순례단이 보고,듣고, 느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전합니다.
4일차 녹색순례는 한강하구지역, 교동도에서 우리가 몰랐던 장소와 사건을 알고, 기억하기 위해 걸었다. 그 시작은 고구2리 복지회관에서 주민의 이야기이다. 교동 주민이자 교동역사문화발전협의회 대표, 교동향교 전교(교장선생님)이신 한기출 님께 삼국시대에서부터 근대까지 교동도가 차지한 위상과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들었다.
평화 통일에 대해 질문하자 ‘교동에서 외국문물의 유입, 조선 물고기를 잡아 들여오는 등 긴 세월의 생활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특히 6.25 이후 70년대 초중반까지도 항시 막힌 인위적인 담장은 없었다.’며 ‘너무 적대시하거나 너무 무방비한 상태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순례 첫째날 철책을 따라 걸으며 순례단에서 평화와 통일에 대해 유연한 태도와 상상력을 갖는 것에 대해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때가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다. 평화를 위해 유연하고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하다던 말씀을 기억에 남기고 다음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동은 과거 백제와 고구려의 접경이 벌어진 흔적이 남아있고, 조선시대에는 중국을 막기 위해 삼도(황해도, 경기도, 충청도)의 수군을 강화하며 총사령관을 둘 만큼 중요한 중심지로써 기능했다. 6.25 이후엔 많은 피난민이 넘어와 상업으로 생계를 꾸리며 또다시 중심지가 되었지만 전쟁 이후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며 현재까지도 주민들은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이지만 많이 잊혀진 섬, 지금도 여전히 아픔을 갖고 있는 교동은 어떤 곳일까.
순례단은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희생지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곳에서는 1951년, 부역혐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약 200명, 주민들에 따르면 약 400명에 달하는 주민이 비정규군에 의해 불법 집단학살을 당했다. 안내판이 세워진 뒤 발생한 사건과 주민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인, 그러나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일 수 있는 사건을 듣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일정으로 나아가면서 그 간 만나지 못한 세찬 강풍이 이어졌다. 지금껏 들었던 이야기와 이외에도 알지 못한 또다른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지, 온몸을 때리던 강풍이 이번 순례와 과거의 아픔을 다시금 기억하라는 의미인걸까 돌아보며 걸어갔다.
발길은 송암 박두성 선생의 생가에 이르렀다. 교동은 일제강점기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일생을 바친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나신 곳이기도 하다.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창안하신 선생은 우리말, 우리글에서 시각장애인 역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여러 명언을 남겼다. ‘능한 목수는 아무리 굽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 법’이라는 선생의 말에 함께 위로를 얻었다.
화개산을 지나 도착한 곳은 읍성이다. 교동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지역과 음암량 앞바다를 살펴본 후 대룡시장을 거쳐 교동대교를 지나 교동도를 나왔다.
강화나들길을 걷는 동안 서쪽에서는 해가 지고 있었다. 갈대가 늘어선 아름다운 길과 바다를 한 켠에 두고 거친 바닷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걷던 길, 단편적으로나마 교동에 대해 듣기 전과 후 나아가는 걸음걸음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졌다.
만월평야 앞에 도착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등재되지 못한 군시설과, 어업과 연관된 해양쓰레기 문제를 듣게 되었다. 특히나 참담한 것은 그 간 법적인 문제로 어민들은 규제를 피하고자 꽃게를 잡을 때 일회용 그물을 사용하고 있고, 새우를 잡기 위한 그물에는 수십년 전의 비닐이 새우보다 더 많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민사회가 노력해 일회용 그물의 제대로 된 통계를 취합하기 시작하고, 비닐의 경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한동안 2050년에는 바다에 물살이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었는데 2050년까지 갈 일이 아니라는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무거운 마음이 이어졌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순례단은 갯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불음도에 들어간다. 또한 그물을 던지면 물살이보다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비닐이 더 많이 건져진다는 바다에서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고 조사도 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알게 되고 또 어떤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지를 준비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록 : 23회 녹색순례단 1모둠(변인희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