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땅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되며, 순례단이 보고,듣고, 느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전합니다.
스물세 번째 녹색순례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함께 부르는 마지막 밥노래*를 시작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순례단원들은 머물렀던 숙소를 청소했습니다. 볼음도에 들어오며 가지고 왔던 모든 것, 단 하나의 쓰레기도 섬에 남지 않도록 모두 들고 길을 나섭니다. 30분 정도 걸으니 볼음항이 보입니다. 녹색순례단원은 이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선수포구항에 도착해 해단식을 했습니다. 이로써 7박 8일간의 녹색순례가 끝났습니다.
*밥노래: 녹색순례단은 식사를 하기 전 밥노래를 부릅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녹색연합의 23회 순례의 제목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제목처럼 순례의 첫 발걸음을 뗄 때 우리는 한강하구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분단의 아픔, 그로 인해 지켜진 생명의 삶터, 하구둑으로 막히지 않은 바다의 역동과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애환. 7박 8일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한강하구와 정성스럽게 관계 맺으며 녹색순례단은 이곳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철책으로 가로막혀 단절된 공간에서 순례 기간 내내 ‘연결’이라는 단어를 자주 만났습니다. 북녘에 있는 할머니 은행나무와 남녘의 할아버지 은행나무, 그레질로 백합을 잡는 어민과 부리로 먹이를 찾는 저어새, 넓게 펼쳐진 갯벌로 이어져 있는 남한과 북한, 그리고 그곳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생명들, 지역과 시간을 뛰어넘어 바다를 돌고 도는 쓰레기. 어떤 연결은 마음 아팠고, 어떤 연결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활동가에게 ‘연결’이라는 키워드는 특별합니다. 활동가는 연결하는 사람이니까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연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습니다. 연결의 공간 한강하구에서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지켜낼지, 어떻게 이 경험을 시민과 나눌지 고민했습니다.
코로나19로 4년 만에 다시 떠난 순례는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온종일 걸어 발 딛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중에서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 그러다 잠깐의 쉼이 주어지면 힘들어도 서로 얼굴을 보며 웃어보는 것, 녹색순례는 우직하게 현장을 지키는 녹색연합을, 주목받는 일보다 필요한 일을 하는 녹색연합의 활동을 꼭 닮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활동가들은 순례길에서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얻은 힘으로 생명이 고통받는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봄이 돌아오면 다시 길을 나섭니다.
가는 곳마다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신 한강하구의 주민분들과 글을 읽음으로 함께 걸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강하구는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공간입니다.
*기록 : 제 23회 녹색순례단 1모둠(이다솜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