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순례의 여섯째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아침을 시작한 굴뚝새는 기분 좋게 잠을 깨우고, 산새로 흐르는 계곡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반겨줍니다. 숲의 품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가 봅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여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0 km 이상씩 걸었던 평소와 달리 10 km도 넘지 않는 짧은 여정, 쉼처럼 느껴지기도 한 오늘은 <숲을 듣는 날> 입니다. 설악산과 매봉산이 어우러지는 백두대간 진부령 정상에서 우리는 생태교육센터 이랑의 유종반 대표님과 휴양림 근방의 숲을 거닐며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리를 지날 때면 수많은 나무와 작은 꽃들, 곤충과 새를 만납니다. 순례 중에도 여러번 그랬습니다. 처마 밑에 집을 지어 둔 제비를 만나거나 길가에 핀 진달래며 겹벚꽃 나무를 지나치면 반가움에 눈인사가 절로 지어집니다. 무리지어 뛰노는 무당개구리와 올챙이떼도, 먹이를 이고 지고 길을 떠나는 개미 군단을 발견해도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자연을 찾아가며 자연에 들고 있다 여겼습니다. 그런데 같이 걷던 모둠원이 제가 보지 못했던 꽃들의 이름을 일러줍니다.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꽃마리, 토끼 귀 같은 꽃잎을 가진 별꽃… 하나 둘 짚어주며 이름을 일러준 뒤로는 그 꽃들도 지나는 길목마다 매번 눈에 들어옵니다. 알지 못할 땐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알고 나니 자꾸만 눈에 밟히네요.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유종반 대표님은 말씀하십니다. 이해와 사랑은 동의어라서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알아가고 이해해야 한다고요. 우리는 순례를 함께 하며 자연을 알아가고 동료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순례길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나는 과연 나로 살고 있던가요?]
유종반 대표님은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하십니다. 숲을 사랑하기 때문이시겠지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궁금하고 사랑할 것들 뿐이라 우리도 대표님을 따라 두 걸음 걷고 나무를 만나고 두 걸음 걸어 잎을 봅니다. 나무들은 자세히 보면 생김새가 모두 다릅니다. 층층마다 가지를 뻗는 층층나무, 매번 바위에서 자라는 매화말발돌이, 잎에서 생강 맛이 나는 생강나무, 수꽃과 암꽃이 한 나무에서 자라는 까치박달… 나무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고 자랍니다. 그렇지만 서로를 부러워하거나 업신여기는 모습은 없습니다. 그들은 주변이 어떻던지 본연의 모습대로 자라고 있습니다. 자연은 그렇게 무수한 나들을 품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숲에 들어 있다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줄곧 같아지려 애쓰던 나의 모습, 주변과 비교해 더 빠르고 대단해야 할 것 같던 촉박한 마음이 단번에 녹아내립니다. 자연의 품 속에서 저 역시 나무처럼 살아도 된다는 위안을 가득 받고 맙니다.
[내가 없는 나무처럼, 나 이외의 것들로 가득 차는 참나무처럼]
그러나 나무처럼 사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나로 살기 위해 ‘나 없이’의 삶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나무들이 으레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참나무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참나무는 나의 것을 제일 많이 나누는 나무라고 합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줌으로써 다른 생명체를 먹여 살리고, 그로 인해 내 자리가 더 넓어지는 것이지요. 독존이 아닌 공생을 택한 참나무는 나로 살기 위해선 반드시 네가 있어야만 한다는 함께의 삶을 잘 보여주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불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기온은 10도 안팎으로, 산중이라 조금은 쌀쌀했습니다. 빗방울도 하나 둘 떨어지려는 참이었지요. 그때 순례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팔 한 쪽을 내어줍니다. 서로의 온기와 품을 나누고 베푸니 그건 또다시 나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일이 됩니다. 서로 엮어낸 팔처럼 어쩌면 우리도 나무처럼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이 엮이는 시간]
숲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따뜻해진 탓일까요, 추위도 가시고 햇볕도 적당합니다. 걷기 좋은 바람을 따라 순례단은 용대2리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모둠별로 모여 신나는 몸놀이를 즐기기 위해서요. 함께 목소리를 외치는 이구동성 게임,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는 한 발짝 게임, 대망의 신발 던지기까지 모둠이 한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게임인지라 승패가 갈렸지만 순례단의 표정을 보니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바탕 깔깔 웃는 일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웃음으로 서로를 단단히 엮는 우리가 되어 오늘 순례도 참 다정하고 따뜻했습니다. 엮이는 웃음 속으로 여섯째 날도 벌써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글.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오송이 활동가
*제 24회 녹색순례는 한살림연합에서 유기농 쌀과 미숫가루를, 에코생협에서 식재료를, 철도노조에서 물품을 후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