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녹색순례 2일차] 분단의 길에서 철새를 만나다

2023.04.06 | 녹색순례-2023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땅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되며, 순례단이 보고,듣고, 느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전합니다.

녹색순례 두 번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 내린 단비가 그치고 조금은 쌀쌀하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두 번째 날을 시작합니다. 문수농원에서 스트레칭을 시작하고 차분히 걷기를 시작합니다. 문수산성에서 강화대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서울에서는 벌서 져버린 벚꽃이 이 곳에서는 한창 만개하고 있습니다. 벚꽃의 환영을 받으며 강화대교를 건너자 평화로운 풍경과는 다르게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강을 통해 수도 서울로 들어갈 수 있는 이 곳 강화 인근 지역은 과거부터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외세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곳곳에 돈대라 불리는 요새를 세웠고, 현재는 북한과의 정전협정으로 철책과 초소가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는 긴장이 무심히 흐르는 곳입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 문수산성과 마주보이는 염주돈대가 보입니다. 염주돈대에서 마주 보이는 염하(강화해협) 건너편에는 문수산성이 있습니다. 숙종 때 축성된 산성인 김포 문수산성은 조선 말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조선군 사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지금 이 곳에는 해안경계를 위한 철책이 이어져 있습니다. 이 철책은 염하(강화해협)를 사이에 두고 접경 지역인 강화도 북부 해안선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철책을 따라 순례를 이어갑니다. 곳곳에서 힘을 내기 위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조그맣게 들리는 노래말이 철책과 묘한 대비를 이룹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경계 없는 하늘과 달리 이 곳의 경계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염하에서 한강 하구의 유도 습지보호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잠시 휴식을 갖으며 철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연미정을 앞에 두고 있는 이 곳은 북쪽 북한 지역과 직선 거리로 4km에 불과합니다. 경계 철책이 삼엄하게 둘러진 이유입니다. 철책에는 경계병을 대신하여 북쪽을 향한 CCTV가 감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철책 너머 갯벌에는 기러기가 먼바다쪽을 바라보다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경계를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철책 곳곳에는 “지뢰 위험”을 표시하는 경고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사짓는 현지 주민들과 화사한 벚꽃, 중간 중간 보이는 관광객들의 모습 속에 지뢰를 알리는 표지판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여전히 전쟁 중인 분단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한 편, 염하를 지나 강화 북부해안의 접경지역으로 향하는 이 곳은 “한강 하구 습지 보호 지역”으로 보호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 2006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멸종위기종과 철새 도래지로 생물다양성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을 한강 하구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김포와 강화 사이에 있는 유도를 중심으로 해안 갯벌 일부가 포함되는 이 지역은 멸종위기종 2급인 큰기러기의 주요 도래지입니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사이에 두고 큰기러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뒤 봄이 오면 북으로 향합니다. 멀리서 날개짓을 하는 새떼들이 하늘을 자유로이 거니는 모습을 다시 보며 철책과 함께 걸음을 이어갑니다.

오후 4시가 될 무렵 두 번째 날 숙소인 화문석 마을체험장에 도착했습니다. 화문석 명장이신 분과 함께 화문석 만들기 체험을 하고 고즈넉한 마을길을 걸어 숙소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보이는 철책과 철책 너머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를 바라보며 이번 순례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된 하루 였습니다.

*기록 : 녹색연합 2023 순례 3모둠(김원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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