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녹색순례 3일차] 교동도를 찾아서

2023.04.07 | 녹색순례-2023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땅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되며, 순례단이 보고,듣고, 느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전합니다.

강화군 송해면 화문석체험관에서 삼일차 순례길을 나섰다. 앞선 이틀 동안 흐린 날씨에 비가 내렸지만, 이날은 햇볕 아래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난 길에서 그랬듯, 한강 하구가 이어진 길에는 철책과 감시 초소가 자리했고, 그 위를 나는 흰뺨검둥오리만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곧 양사면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대로에서 만났는데, ‘청정 평화 화합의 땅 양사’라는 표어가 어색한 옷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군사 경계가 삼엄한 인근 지역에서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악봉에서 바라본 북한
별악봉 하산길

대로를 지나 진입한 곳은 강화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별악봉이었다. 봉우리에 세워진 정자에서는 건너편 북한 지역이 보였는데, 개성, 개풍군 해창리의 집단 농장, 그리고 예성강 하구 연백평야와 송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안개에 가려져 희미했지만, 망원경을 통해 TV에서 낯익게 보았던 북한의 선전문구도 볼 수 있었다.어쩌면 누군가는 이 별악봉에 서서, 갈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몇 번씩 손을 내밀어 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례 여정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산길을 처음 걷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순례단이 함께 호흡하는게 느껴졌다. 일상이 곧 치열한 경쟁인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함께하는 동료가 뒤쳐지진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시선, 나의 배고픔뿐만 아니라 바로 옆 사람까지 살피게 되는 마음 같은 것들이 그랬다.

교동대교 앞 초소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교동대교인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차량의 경우 간단한 신분증 제시로 통과 가능했지만, 규율상 도보로 대교를 지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동도는 남쪽으로 강화도, 북쪽으로는 황해도 연백을 약 3km 거리에 두고 있어, 섬 전체가 민간인출입통제선 영역 안에 위치해 있었다. 결국 단체로 인근 18번 마을 버스를 타고 교동대교를 건넜는데, 버스 안에서 교동도 주민 할머니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온 실향민들이 섬을 오랫동안 일구어 왔는데, 그들이 북한에서 불과 2.6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교동도에 자리잡았던 건, 금방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나마 생존중인 1세대 피난민은 90대 나이에 이르렀고, 섬에는 2세대, 3세대 후손들이 드물게 남아 있는데, 무심히 경계를 가르던 철책망과 초소, 총을 든 군인들이 겹쳐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교동도 마을

버스가 교동도에 진입하자 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또 옆에 앉으신 할머니의 설명을 통해 화개산과 고구 저수지가 어딘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고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만큼 개발도 많이 이루어져서 화개산에는 모노레일과 전망대가 건설되고, 최근에는 4차선 도로를 만들어 5월 개장 예정이라고 들었다. 오랜 고립으로 형성됐던 1970~80년대 풍경이 이젠 관광 가치를 가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다리가 놓이는 섬마다 자연생태계, 과거의 문화들이 훼손되었던 전례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화개산과 민간인 학살지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음날 일정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고구2리 마을회관 숙소에 도착한 뒤, 잠시 저물어가는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갈무리했다.

*기록_23회 녹색순례단 2모둠(박상욱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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