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호 노크북 | 『야생의 법』, 우주 공동체 중 하나일 뿐인 우리

2025.11.18 | NEW 녹색희망

활동가들은 딱딱한 언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 개발사업계획서, 안전점검보고서, 경제발전계획서 등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읽어내야 할 수치와 전문 용어가 넘쳐나거든요. 눈에 보이는 숫자 이면의 숨겨진 의도와 거짓 역시 자세히 살펴야 하기에 여러 번 읽고 또다시 읽습니다. 자주 접하는 언어가 사무적이고 정제되다 보니 가끔은 마음과 사고방식도 그에 치우치게 됩니다. 내 마음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자연에게 보답하기 위해 시작한 활동인데, 어느새 그런 고마움은 잊고 눈앞의 싸움과 일상에 치여 좁아진 시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풍이 들어 알록달록해진 산길을 걸으면서도 그 고운 빛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정말 큰 손해잖아요!

언어 고갈은 곧 사고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환경보호 활동에 관한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활동에 나선다면, 왜 그런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냐, 내가 내 땅에서 자유롭고 정당하게 돈 좀 벌겠다는데 왜 막아서냐,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냐 같은 날 선 물음에 말문이 턱 막힐 수도 있겠지요. 혹은 아무리 싸워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결국 자본의 논리에 맞서 자연의 권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고,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후의 활동은 무의미할 것이라는 비관에 쉽게 물들 수도 있고요. 가치관을 보호하고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우리는 앞서간 자연의 동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갈려 나간 마음을 메우고 연결하는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환기하며 미래를 다시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번 [노크북] 코너에서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야생의 법 : 지구법 선언』을 함께 읽었습니다.

『야생의 법』의 저자 코막 컬리넌 역시 자신보다 앞서간 자연의 동반자인 토마스 베리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토마스 베리는 『지구의 꿈 The Dream of Earth』, 『위대한 과업 The Great Work』에서 지구신학자적인 자신의 자연관을 펼치며 많은 사람에게 자괴 파괴적 산업문명을 멈추고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촉구했습니다. 코막 컬리넌은 이러한 논의를 이어받아 확장시키며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지구 공동체적 사고를 제시합니다.

컬리넌은 현재 우리의 거버넌스 시스템이 인간의 생태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지구 공동체의 일원인 인간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은 법 시스템이라면 다른 생명 존재에겐 얼마나 배타적이겠어요. 컬리넌은 현재의 인간/자본 중심적 법 시스템을 생명 중심적biocentric, 혹은 지구 중심적Earth-centered 관점으로 바꾸자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태계의 연간 생산량보다 빠르게 소비하고 있으며 생태계 자체마저 소비하고 있음을,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상실을 부추기고 인구의 대량 붕괴마저 초래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상황의 대안으로써 ‘우리가 개인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변화가 이뤄져야 하고, 다음으로 인간 사회 내지 일반적으로 지배적인 인간 사회의 거버넌스 패러다임의 전환, 그리고 지구법학의 발전, 마지막으로 야생의 법 접근법의 채택과 더 야생적인 법이 실행돼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책이 처음 쓰인 것이 2002년임을 고려하면 당시의 긴급한 진단이 지금은 거의 사망 선고 직전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패러다임은 점진적이 아닌 급진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컬리넌은 말합니다. 생태계 절멸의 위기 앞에서 순차적이고 지엽적인 변화는 기다릴 수도 없고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새우보다 더 나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우주 전체 생태계 구조 속 우리는 그저 하나의 구성원일 뿐입니다. 오래전부터 맺어왔으나 순식간에 잊어버렸던 이러한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되살리기 위해 자연의 권리는 단기간에 전폭적으로 논의되어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2008년 세계 처음으로 자연에 법적인 권리를 인정했던 에콰도르가 2025년에 와서는 도로 관련법을 무효로 돌리려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현재 브라질 벨렝에서는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며 지금 당장 강력한 기후협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있고요. 또 다가올 11월 22일(목)에는 녹색연합이 준비한 2025 그린컨퍼런스 ⟨RIGHTS OF NATURE 자연의 권리 : 자연을 지키는 틀을 바꾸다⟩가 열립니다. 자연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야생의 법』을 읽으려니 긴장과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차오릅니다. 그럼에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천천히 따라 쓰는 동안 단단하고 작은 결의를 다질 수도 있었고요.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고른 문장을 아래에 소개할게요.


함께 읽은 이들: 소하연, 신지선, 서해, 김다정 활동가

정리: 홍보팀 김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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