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호 우녹사 | 12년 차 고인물? 녹색연합 마중물! – 배선영 활동가 인터뷰

2025.12.03 | NEW 녹색희망

이번 우녹사에서는 녹색연합에서 1년을 보낸 하연이, 2014년부터 지금까지 녹색연합에서 활동해 온 선영을 인터뷰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십몇 년 전 연도가 쓰인 보도자료를 보게 될 때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오래된 사진 속에서 지금 옆에 앉아 있는 활동가의 앳된 얼굴을 발견할 때면 붙들고 묻고 싶어집니다.

지금껏 어떤 시간을 거쳐오셨나요? 무엇이 당신을 변하게, 또 변하지 않게 했나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활동을 하고 있나요?

막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기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보아야 할지 까마득합니다. 그저 궁금한 마음으로 조각들을 모읍니다.

녹색연합은 들고 나며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이어지고 굴러가는 유기체 같아요. 닮은 표정과 태도와 관점으로 이전의 것들을 이어가면서도, 잇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르게 묻어나지요. 우녹사 읽고 녹색연합에 묻어있는 선영의 색깔 찾아보아요.


현재 맡고 있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홍보 팀장이 되기 전에는 어떤 팀과 현장들을 거쳐왔나요?

홍보팀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을 여러 채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내고, 녹색연합을 아는 시민, 모르는 시민 모두와 어떻게 잘 소통할까를 고민합니다. 홍보팀 활동가는 현장의 순간을 가장 앞에서 담고, 기록합니다. 서울 성북동 사무실에서부터 광화문 광장, 신안 앞바다, 석탄화력발전소, 백두대간까지 모두 홍보팀의 현장입니다. 

홍보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도 활동 의제를 시민의 언어로 알리는 일을 꾸준히 맡아왔어요. 

2014년 이음팀 활동가로 시작하여 3년간 일했어요. 모금과 시민참여 활동을 하고, 여러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2017년에는 생활환경 의제 활동가로 폐기물 문제 대응을 하며 국내 최초로 대규모 ‘플라스틱 어택’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라는 제목으로 ‘쓰레기 탐사대’를 꾸려 시민과 직접 폐기물 발생-처리 시스템의 이면을 탐색하는 활동을 했어요. 여러 단체에서 녹색연합 쓰레기 탐사대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을 보고 나름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상상공작소라는 모금캠페인팀에서 활동을 하고, 녹색 휴식년 이후에는 이음팀으로 복귀하였다가 홍보팀장이 되었어요. 모금과 홍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이고, 사실상 계속하던 고민이 작년과 올해 홍보팀장을 하면서 활동으로 펼쳐진 것이지요. 

2022년, 녹색휴식년 기간에는 환경교육사 2급 자격증을 땄습니다. 환경 문제 해결에 교육이 갖는 힘을 믿어요. 현장과 시민의 일상을 연결하는 환경교육에 관심이 있습니다. 비하인드인데요, 어떤 공모 사업에는 환경교육사 보유 기관에 가산점이 붙거든요. 자격증을 따고 와서 농담삼아 ‘걸어다니는 가산점이 되었다’라며 웃었어요. 

녹색연합에서 처음 일하게 된 시기, 그 첫 마음이 궁금해요. 선영은 어떤 삶의 맥락으로 녹색연합에 흘러오게 되었나요? 

다르게 살고 싶었어요. 논문을 쓰고 박사 과정을 밟을 수도 있었고, 임용을 봐서 선생님이 되는 길이 있었지만, 고민이 깊었어요. 우연히 녹색연합 그린컨퍼런스 <전지구적 연애> 행사를 만난 거예요. ‘타이니 하우스’를 직접 짓고 차에 연결해 거주하는 분이 강연하신다는 거예요. 간결한 생활양식에 한창 관심이 컸거든요. 들여다보니, 지구와 사랑에 빠진 6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더라고요. 무척 좋은 기획이었고, 거기서 완전히 반했지요. 녹색연합이라는 조직이 있네,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신기했습니다. 사과를 나눠 주더라고요. 껍질도 안 벗긴 빨간 사과를 통째로요. 먹다 남은 사과 심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에 애매하게 쥐고 있었어요. 게시판 같은 곳에 안내가 종이테이프로 덕지덕지 아무렇게나 붙어 있었고, 진행도 느슨했고요. 그 느슨한 틈에서 불편이 아닌 편안함을 느꼈어요(물론 지금은 그 ‘느슨함’이 철저히 기획된 의도라는 것을 알죠!).

그 후로 공채 공고가 떴고, 지원해서 덜컥 붙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얼마전에 다시 읽어볼 일이 있었는데, 뉴욕시의 표어인 ‘엑셀 시어(Excelsior)’에 대해 썼더라고요. 더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태도는 인간 개인과 사회, 그리고 지구 환경에도 악하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아요. 적절한 예로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이렇게 말하면서 아마 스스로 만족했겠죠?(웃음) 여튼, 다른 삶을 고민하면서 성장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느림의 철학에 매료되었을 때 마침 녹색연합을 만나게 된 거예요.

‘신념과 직업을 일치시키며, 자신의 삶을 녹색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라는 공채 공지 문구에 또 반했어요. 신념이 곧 일이 되고, 일이 곧 삶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질까 심장이 막 두근댔거든요. 동탄에서 서울 성북동까지 왕복 네 시간 걸리던 출근길이 피로보다는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답니다.

1년을 지내보니, 그냥 역량 있는 활동가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을 이어가고, 무술을 연마하듯 나의 영역을 찾고 또 벼려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보팀에서 진행한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강연 시리즈가 떠오릅니다. 반달가슴곰 KM-53과 보호구역을 다룬 다큐를 함께 보고, ‘응답하기’라는 개념으로 다시 읽어보는 시간이었어요. 요새 이곳저곳에 보이는 ‘응답하기’는 기존의 틀을 다시 질문 던지게 만드는 한편, 구체성 없이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가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현장과, 그 현장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확장하는 이론을 한 공간에 불러 조합해 낸 자리였던 것 같아요.

사진, 영상 편집 등 기술적인 부분은 홍보팀의 아주 일부분이라는 것을 느껴요.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포인트를 읽어내는 것과, 녹색연합이 가지고 있는 현장성이라는 힘을 엮어내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역량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보통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키우고 다지시나요? 탐색하고 익힌 것들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풀어내는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나의 취향과 관심사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요. 행사로 예를 들자면, 어느 행사에 가고 싶은지가 취향과 관심사지요. 그 행사에 왜 가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분명 어떤 요소가 있겠죠. 추구하는 가치관이 반영될 테니까요. 왜 이 행사나 공간이 끌리지? 여기서 받는 느낌이 좋아. 그럼 그 느낌이 뭐지? 어떤 요소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줬지? 계속 생각하다보면 거기서 인사이트가 나와요. 현상을 그냥 현상으로 두면 아무런 인사이트도 얻을 수 없거든요. 현상에서 계속 의미를 도출하고 해석을 하면 인사이트가 쌓여 기획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기 안의 질문을 묵혀서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어떤 것에 관심이 생겨서 계속 파고든다고 해도, 당장 좋은 기획이 뚝딱!하고 나오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 기간에는 내가 하는 다른 모든 경험이 그 고민으로 수렴되어야 해요. 내가 읽는 것,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 다른 단체는 어떻게 하지? 다른 기업은? 이런 것들을 내 안에 꾹꾹꾹 눌러 담는 거예요. 마치 양념을 첨가하며 장을 담그듯이요.

저는 홍보팀의 활동이 ‘편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활동의 현장과 시민을 연결하기 위해 꼭 맞는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듬는 일이요. 홍보팀장이 되고 가장 처음 읽었던 책이 최혜진 씨의 <에디토리얼 씽킹>인데,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편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꼭 홍보팀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언어는 결국 설득의 언어잖아요. 밀도를 높이고, 해상도를 선명하게 만들고, 의미를 뾰족하게 벼리는 모든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역량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정밀하게 다듬어진 언어가 집회의 발언으로, 교육 활동으로, 현장 모니터링 보고서로 도출된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홍보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네요.

또 시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안 되잖아요. 그게 소셜미디어 피드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집회에서든, 시민을 붙잡고 이야기하려면 소통이 필요한데, 녹색연합이 하고 싶은 말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면 누가 듣고 싶어 하겠어요.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꽂히도록 변주하는 말 걸기 방식과 솔깃한 내용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니까 적절한 방식과 내용이 도출되려면 그 전에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가 정리되어야 해요. 어떤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우리 행사에 초대하고 싶은지요. 녹색연합의 자연생태 활동에 관심 갖는 시민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책을 읽을까? 기후에너지 이슈에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싶은 시민은 어떤 뉴스를 주로 찾아볼까? 우리 활동 소식에 ‘좋아요’를 누른 그 사람이 왜 하필 그 게시물에 관심을 표했을까를 상상해 보는 거예요. 흔히 ‘페르소나’를 분석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거창한 것보다는 ‘나라면 어떨까’ 입장을 바꿔보는 거예요. 

10년이 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변화된 것이 있을 테고, 또 변하지 않은 것도 있을 테지요.


먼저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바쁜 일상에 뜻하지 않게 뒤로 미뤄지기도 하고, 때로는 무뎌지게 되기도 하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잊지 않고 언제나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끔 울컥해요. 광장에서라던가, 순례 길에서. 작년 그린컨퍼런스에서 동기인 다솜이 연사로 나와 녹색연합의 자연의 권리 활동을 이야기했어요. 설악산 케이블카 이야기를 하다가 다솜이 울컸했는데, 그때 저도 많이 울었어요. 지금 또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함께 싸운다는 감각이 소중해요. 지난한 싸움이고, 제가 그 현장에 없기도, 있기도 했지만, 우리의 싸움이고, 같은 곳을 향해 간다는 방향 감각이요. 흔히 이쪽 판에서는 ‘어깨 걸고 간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일을 하면서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는 거예요. 꼭 돋보이고 싶을 때가 있고, 사람이라면 ‘아 저거 내가 한 건데’, 할 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이 활동하고 있다’, ‘함께여서 가능하다’, 그런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듣고 온 녹색법률학교 강의에서도 2016년 설악산 케이블카 원주지방환경청 점거에 대해 두 변호사님께서 각각 한 번씩 사례로 드셨거든요. 그런 시간을 같이 지나온 거네요.

동료지요. 동료들에 대한 소중함.

저는 그걸 기다려요. 쌓여갈 시간을 기다립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더라고요. 언제나요. 제가 1년 차였을 때도, 12년 차인 지금도 홀로 성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을 항상 새깁니다. 내 곁의 동료를 소중히! 혼자 잘난 척 하다가 실수하고 얼굴 빨개졌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게요. 크로스 체크해주는 동료에게 오늘도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누구든 틀릴 수 있으니까요. 

올해 곰이삿짐센터를 함께하면서도 아주 다양한 함께함이 있었지요. 

올해는 협업의 희열을 그 어느 때보다 입체적으로 느꼈어요. 사육곰 산업 종식을 앞두고, 철창에 남은 개체들을 보호시설로 옮기기 위해 대대적인 모금이 시급했고, TF팀으로 활동하며 ‘곰이삿짐센터 프로젝트‘를 전개했습니다. 

저는 홍보를 담당하고, 모금을 담당하는 활동가와 정책을 담당하는 활동가가 함께 합을 맞췄습니다. 맡은 역할을 온전히 해내고, 또 공유하고,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잘 운영되었어요. 

내부 협업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죠. 정책 담당 활동가는 환경부, 농가, 네트워크 같은 이해관계자들과, 홍보를 맡은 저는 뮤지션, 일러스트레이터, 개발자와, 모금을 맡은 활동가는 다양한 후원자 그룹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내부에 공유하면서 일이 되게끔 만드는 협업의 기쁨과 고통을 온전히 느꼈습니다.

과정이 지지부진할 때도 있었고, 여러 불확실성으로 또렷한 메시지를 낼 수 없어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적재적소에 나타난 기회와 귀인들의 도움으로 곰 구출이라는 목표한 바를 도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우리 활동은 함께여서 가능했다!

혼자 하면 편할 때가 있어요. 시시콜콜 공유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진행하면 되니까 속도감 있고 효율적으로 일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 실수하거나 사고가 나면 온전히 책임도 나 혼자 짊어지고요. 일이 잘 되면 성과도 나의 것으로 남습니다. 거기에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어떤 일이든 잘되고 안되고를 떠나 녹색연합의 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하려는 협업이란, 느리고 답답하고 때때로 갈등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 운동으로써 녹색연합의 활동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내 활동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후원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해요. 예컨대 제가 활동비를 200만 원 받는다면, 한 달에 만 원씩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시민 200명이 나를 통해 녹색연합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드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태해지려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변화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어떤 마주침은 이제껏 생각해본 적도 없는 방식으로 내 삶을 완전히 바꾸기도 합니다. 녹색연합에서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세월호 참사에요. 2014년 4월, 제가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터졌어요. 저는 당시 밀양에 있었어요. 경찰이 밀양 할머니들의 집에 들이닥칠 것을 대비해, 당번을 정해서 다 같이 밤을 새웠던 때였거든요. 오늘 내가 묵을 집은 누구네 할머니 집이고, 그 집에는 아궁이가 있었고, 함께 온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소개를 하고, 신입 활동가입니다, 인사를 하며 국물 같은 것을 먹을 참이었어요. 그때 뉴스에 침몰 사고가 보도되었죠. 전원구출이라는 말에 다행이다, 안도한 기억이 나요.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의 역할, 사회적 재난과 같은 고민과 논의를 녹색연합이 해가는 틈에 저도 있게 되었어요. 만약 녹색연합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세월호 사고를 시민으로서 진지하고 깊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은 거예요.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살지 않았을까. ‘녹색연합이 자기를 사람 만들었다’는 어떤 선배의 말을 좋아하는데,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거죠.

녹색연합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자 없는 기자회견’이 그렇게 싫었어요. 아니 선배들은 왜 기자도 안 오는 기자회견을 추진하냐. 기자도 안 오는 기자회견을 위해서 취재요청서 쓰고, 아무도 안 보는 피켓 만들고, 한 번 쓰고 버릴 현수막 제작하고, 덥고 춥고 배고픈데 기자회견 하면서 서 있고 말예요. 어떤 시기에 녹색연합의 화두는 ‘새로운 운동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저같은 후배들이 주구장창 주장했거든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고루하고 올드한 방식만으로는 어렵다, 레거시 미디어 대응만으로는 안된다 등등… 이런 생각은 활동한지 몇 년이나 지나서야 깨졌죠. 기자가 있건 없건 레거시 미디어의 신뢰도를 무시할 수 없고,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는 활동은 필요하고, 그 내용들이 맥락으로 쌓여 활동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저는 성장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어요. 왜냐면 저에게 문제의식만 있고 뾰족한 대안은 없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채널이 다변화되기도 했지요. 10년 전에 했던 고민, ‘다양한 운동 방식의 도입’은 세상이 변화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녹색연합의 활동 방식의 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때 했던 고민이 쓸데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들 덕에 녹색연합이 조금씩 변화에 준비된 조직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러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던 계기는, 올해 5월 17일 대만에서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대만 핑둥현의 마안산 핵발전소 2호기를 마지막으로 대만은 핵발전소 없는 국가(非核家園)가 되었는데요, 그 역사적인 순간 영광스럽게도 제가 현장에 있었거든요. 밤 10시쯤 타이베이 대만전력공사 앞 전광판을 바라보며 다 함께 카운트 다운을 외칠 때 퍼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켓을 만들고, 영향력을 따지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고, 집회를 하고, 수많은 활동가가, 시민이, 지역 주민이, 정치인이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고, 토론회에 참여하고, 공청회에 참여하고, 투표를 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여론을 만들어내고,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울고 웃고 고함치고 춤추고 했을까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40년 동안 탈핵을 위해, 마지막 핵발전소가 멈춘 ‘오늘’을 위해 빼곡히 흘러간 시간이 제 눈앞에 타임랩스로 펼쳐지더라고요. 앞으로의 10년, 환경활동가로 더 힘낼 수 있겠다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장 녹색연합의 어떤 활동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성과를 내지 못해도, 내가 만든 행사에 기대만큼 많은 사람이 오지 않아도, 성급한 실망보다는 길게 보고 보폭을 크게 가져가 보는 거예요. 내가 완성하지 못한 길을 누군가가 완성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잖아요.

기자가 있건 없건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는 활동이 필요하고, 그 내용들이 맥락으로 쌓여 활동의 역사가 된다는 부분이 참 좋아요.

그 깨달음의 과정이 저한테는 성장의 시간이었어요. 시민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마주치면서 내 무지를 드러내며 배우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래서 신입활동가들이 어떤 일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해도 저는 너그러워요. 왜냐하면 저도 잘 몰랐거든요(웃음).

대만 탈핵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이미 10년 해왔는데 앞으로 또 10년 더 힘낼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다니, 하면서도, 그런데 그 순간에 정말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 눈에 선해요. 이전에 만난 어떤 환경 활동가분이, 내가 하는 일은 건네주는 거다, 잘 건네받아서 또 잘 건네주는 거다, 하고 말했던 게 생각나요.  

유산이지요, 유산. 지금 내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의 경향성을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실패인가, 경향성을 바꿔 가는 과정이 아닌가 해요. 내가 못 했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기보다는 내 다음 사람이 하겠지. 내 다음 동료가 하겠지, 생각해요(웃음). 

지금의 선영이 갖는 녹색연합에 대한 바람이 궁금해요. 또, 지금 이곳의 선영 자신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녹색연합의 역할을 다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곧 녹색연합에 대한 바람이지 않은가 해요.

지난 민주주의 광장을 지나며 녹색연합이 했던 역할과 광장 이후의 역할에 대해 자주 생각했어요. 작년 12월부터 올해 봄까지 상실할 뻔한 민주주의를 지키려 행동했고, 광장에 녹색연합 깃발이 불참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장에 등장한 녹색연합에 대해 비판하는 시민분들도 많았어요. 정치적인 사안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당장 곰을 구출하고, 새를 살리라는 요구를 하면서요. 녹색연합이 광장에 나갔던 것이 비단 작년과 올해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 시기를 겪으며 지극히 정치적인 녹색연합의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시민들과 소통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어요. 그런 녹색연합의 역할에 대해 시민들이 더 잘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환경운동가이자 사회생태학자인 머레이 북친은 ‘생태 위기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위기’라고 말했습니다. 녹색연합이 곰과 새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활동이 필수적입니다. 보호지역이 보호지역다우려면, 보호지역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법체계가 필요하고요, 그 법을 만들기 위해 활동가는 입법 기관과 협력합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을 보호하려면 보를 철거해야 하고, 보를 설치하도록 지시한 책임자에게 잘잘못을 따져 물어야죠. 녹색연합의 활동은 지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민과 어떻게 잘 소통할까가 제가 올 한 해 천착한 고민이고, 또 저의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민주주의 광장을 이어서 우리의 의제를 어떻게 하면 또 광장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거기서 녹색연합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치열하게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나에 대한 바람은… 잘 모르겠어요. 좀 더 다정해져야 할텐데, 이런 거? (웃음). 최근 다정한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런 수다를 떨었어요. 예를 들면 하연과 제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논할 때, 경험 차이에 의해서 하연보다는 저의 판단이 맞을 확률이 높아요. 하연은 틀릴 확률이 높지요. 다른 게 아니라 틀릴 확률이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종종 저를 비롯한 선배들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와 맥락을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그게 다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 정확한 진단인 것 같아요. 가끔은 그래서 ‘쩜.’으로 느껴져요.

(웃음) Period. ‘내가 맞아, 그러니까 이 얘기 이제 그만.’

그런데 그렇게 따라야 하는 순간도 있잖아요. 매번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고, 수긍하고 따라가는 것도 배움이고, 필요한 자세예요. 여튼 그 고민을 고연차로써 할 것 같아요. 그 이유에 대한 설명만 있어도 확실히 “쩜.”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시간이 없거나, 여유가 없을 땐 더 판단의 근거를 덜 설명하거나 생략해요. 지금 너무 바쁘니까, 나중에 설명하고 일단 이렇게 가는 게 맞아, 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일을 할 때에는 팔로우십만 필요한 게 아니라 자기 리더십을 발휘해야할 때가 있잖아요. 이렇게 제가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일이 너무 잦으면, 후배들이 자기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회를 차단하는 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정해진다는 건 우쭈쭈, 이게 아니라(웃음), 정확한 소통에서 오는 친절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고민을 저연차도 고연차도 하게 되는 것은 이곳이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여지없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팔로우십과 자기리더십의 균형이 어렵네요. ‘이 사람은 나의 어떤 의견도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사람이야’가 아니라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정확히 말할 시간이 우리에게 있을 텐데요. 말할 수 있어야 하지요, 마침표를 찍기 전에. 괄호로 확확 묶어버리고 생략하는 것이 효율적인 소통이라 생각했지만, 마침표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걸 최근에 성찰했습니다.

괄호로 묶기 쉬울 것 같아요. 또 스스로 얼만큼이나 괄호로 묶고 있는지도 잘 알기 어려울 것 같아요. 상대가 얼마큼 이해하고 얼마큼 모르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까 잘 물어보고, 또 잘 물어봄 당하는 것이 유기적으로 되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겠지요.  

그 밖에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시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더 나누어주세요!

코로나 시기를 겪고 나서 와글와글한 시민 모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는 회원 모임, 정기 모임이 더 많았거든요. 왁자지껄 소통하고 싶고, 열려있고 싶고, 나누고 싶습니다.

녹색연합에는 10년 후원자분들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활동가가 직접 쓴 손편지를 작은 선물과 함께 보내는 전통이 있습니다. 한 해에 열 분께는 나는 누구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 활동이 당신의 후원 덕분에 가능하다고 말할 기회가 있는 거죠. 그때 말고는 후원자분들, 참여자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지는 않아요. 시민 참여 행사를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정돈된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 따로 시간을 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아쉬워요. 이름을 들으면 얼굴이 떠오르는 분들이 점점 줄어서요. 

올해 녹색희망을 개편하고, 네 명의 활동가가 돌아가면서 편집자를 맡았는데요, 저는 편집자 인사를 띄우는 코너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 창구를 통해서나마 연결감을 느끼고 싶었나 봐요. 댓글 달아달라고 때마다 요청드렸는데, 반응이 없으면 조금 시무룩해지기도 했어요. 여러분! 동료 시민으로서 더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활동에 대한 피드백도, 가벼운 안부도 언제든 좋아요. 끈끈하게 연결되도록 더 초대하고 말 걸겠습니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아는 동료 시민이 되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자주 만나요!

인터뷰와 정리 : 이음팀 소하연

사진 : 이음팀 소하연

‘우리가 모르는 녹색연합 사람들’에서는 녹색연합 활동가를 중심으로 녹색연합의 가치에 동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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