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백패커스 참가후기1]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용기와 위로를 받은 시간

2024.06.12 | 탈석탄, 행사/교육/공지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남긴 것과 남길 것은 무엇일까요?
이를 찾아보기 위해 기후 백패커스가 지난 6월 1~2일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도 시민들은 위기의 현장을 직접 보고 우리의 일을 고민하기 위해 화력발전소와 해안침식 및 산불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이틀의 시간을 함께 한 참가자 연이 님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녹색연합을 처음 알게 된 건 2016년쯤 ‘일상의 실천’이 디자인했던 설악산, 사대강, 에너지 기후, 로드킬 등 녹색연합의 활동을 위한 파격적인 피켓 디자인을 통해서였다. 최근에는 세종시의 금강 세종보 재가동을 반대하는 천막 농성으로, 대전충남녹색연합 활동가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페이스북에서 ‘기후백패커스 인 강릉’의 홍보 웹자보를 보게 되었고, 친구와 함께 신청하게 되었다. 미니멀 캠핑에 관심이 있었고 친구는 비건을 실천중이라 우리에게 알맞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 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다.

캠프 당일, 강릉에 도착하니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궂은 날씨는 아쉬웠지만, 도착하자마자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석촌의 점심은 꽤 만족스러웠다. 그 중 두부 반찬이 맛있어서 여러번 덜어와 먹었는데, 두부로 유명한 도시인만큼 강릉의 두부는 어디든 맛있는 걸까.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만난 제비집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식당 입구 안쪽에 지어진 둥지에 머리를 빼꼼 내밀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제비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곳에 집을 짓도록 제비 부부의 출입을 허락한 사장님의 마음도 따끈한 두부 같아서, 덕분에 몸도 마음도 온기로 채워진 점심시간이었다.

ⓒ 박지형

이후 일정은 강릉시민행동의 홍진원 선생님의 안내로 강릉안인화력발전소를 둘러보았다. 5조여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민자발전소로 작년부터 운행을 시작했고, 강릉에코파워가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발전소를 한 바퀴 둘러본 뒤 바닷가에 잠시 정차해서 석탄을 옮기는 항만시설과 바다에 정박하는 배와 발전소를 이어주는 컨베이어벨트를 보았다. 그 옆으로 고운 모래 해변이 이어져 있지만, 해안침식이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2400년 전 혹은 훨씬 더 이전부터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안인해안사구는 화력발전소가 지어지기 시작한 때부터 급격하게 침식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해변이 사라지자 전문가들은 파도를 조절하기 위해 바닷속에 잠제와 해변가에 돌제를 설치했지만, 군부대 초소가 쓰러지고 해안도로가 무너지는 피해를 막을 수가 없었다. 해당화 군락지도, 푸른 염전해변도 이제는 볼 수 없다. 인공시설물이 해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해안의 퇴적과 침식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바닷가는 더이상 관광명소가 아닌 공사판이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생산된 전기는 지역 주민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서울과 수도권에 사용될 전기를 위해서 이곳에 화력발전소를 세운 것이다.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논밭에 세워진 송전탑과 차창에 맺힌 빗방울이 마치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눈물처럼 보인다.

첫 번째 프로그램을 마치고, 우리는 경포대로 이동했다. 시민들에게 산림교육을 하는 강릉 포!레스트의 신은주 선생님과 함께 작년 4월에 발생했던 경포 산불의 현장을 방문했다. 산불이 일어났던 8시간 동안 불길이 활활 타올라 산에 사는 동식물과 마을을 집어삼켜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곳곳에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불 현장을 보기 전에 경포대를 올라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사실 나는 경포대가 해변 이름인 줄 알고 있었는데, 경포호수와 경포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정자였다. 정자에는 조선시대 여러 문인의 글씨가 남겨져 있는데, 율곡 이이가 열 살에 썼다는 시도 볼 수 있다. 큰 불 앞에서 국가유산인 경포대가 무사한 건 천만다행이다. 경포대 뒤로 울창했던 산림은 산불로 모두 전소되어 지금은 땡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 하나 없다. 기후변화로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습도가 낮아져 산불이 발생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진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이 산속에 들어와 부주의로 일으킨 산불도 위험요인이 된다. 생태 보호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야생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신은주 선생님의 이야기 중, 우리는 산불에 대해 자연의 역기능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순기능도 분명 있다고 말하신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큰 나무의 밑동만 남은 이곳에 덩굴식물과 외래식물이 많이 자라나고 있다면서, 이 식물들에게 산불은 자신들이 번성할 기회의 순간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왕성한 번식력과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새로 심긴 어린 나무들이 자라서 그늘을 만들면 외래식물은 고사되고, 땅에 유익한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는 자연의 조화와 균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동안 뉴스로 막연하게 접하던 산불에 대한 소식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이상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나무가 가장 많은 우리나라 산에 산불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수종의 필요성과 깊은 숲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마지막 종착지인 보광농촌체험휴양마을로 이동했다. 이곳은 폐교된 학교를 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하여 캠핑장을 만들어 농촌체험프로그램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우리가 하룻밤 머무를 곳은 C구역이었는데, 사이트 앞에는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각자 사이트에서 텐트를 펼치고, 저녁을 준비 한 뒤 모둠별로 모여 준비한 식사를 소개하고 나누며 좀 더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밤, 텐트 위로 쉴 새 없이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아 하루의 고단함을 느낄 새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들어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활동가와 참가자들은 마을 걷기를 하고, 늦잠을 택한 나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바나나와 호밀빵으로 소박한 아침을 먹었다. 보통은 캠핑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비큐와 불멍을 가장 먼저 생각할 텐데 이틀 동안 단출하지만 적당한 양의 식사를 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굉장히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생소하지만 가뿐한 그 느낌이 좋아서 요즘도 종종 환경에게 미안하지 않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식사와 각자 텐트 정리를 마치고 모둠별로 모여 녹색연합 활동가분들이 진행하는 기후행동워크숍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1박 2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활동가님들이 준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참가자 개인마다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다시 한번 한 사람, 한 사람의 매력에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진 서로의 존재를 몰랐지만 다른 장소에서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같은 문제를 인식하며, 각자 있는 곳에서 각자의 몫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해 왔단 사실을 워크숍을 통해 알게 되어 동지를 만난 듯 기뻤다. 강자가 독식하는 야만적인 세계로 퇴행하려는 힘에 맞서 이러한 우리의 작은 실천과 연대가 한 걸음씩 진보할 수 있도록 묵묵하게 이끌어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닌, 모두의 꿈이 되어 현실로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후백패커스 캠프는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글. 참가자 추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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